윤선도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85세로 장수를 누렸으나 세 차례에 걸친 유배로 20년 남짓한 세월을 보냈고 그사이에 해남의 금쇄동과 보길도 부용동 등에서 19년가량을 숨어서 살았다. 그러나 그의 은거는 골짜기에서 고사리를 캐는 생활은 아니었다. 그는 집안의 재력으로 화려하다고 할 정도의 은거
보길도, 다산 초당, 영랑 생가... 특히 해남 보길도. 땅끝마을에서 노화도를 거쳐 한 점 섬으로 바다에 떠 있는 유토피아. 그리고 그 지상낙원을 건설한 고산 윤선도. 보길도는 이번 답사에서 우리가 지적 유희를 즐길 곳이며, 고산은 우리에게 지적 유희를 제공해줄 인물이다.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는
보길도(甫吉島)에 들어가 은거한 것, 유배지에서도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기를 그치지 않은 것 등이 그것이었다. 이로써 드러난 윤선도의 심리적 특성은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자아가 매우 발달하였다는 것, 그리하여 사사로운 정분(情分)보다는 공평무사한 이치(理致)를 중시하였다는 것,
Ⅱ. 본론
1. 시조 교육의 필요성
현행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고전문학을 지도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고전문학은 우리 민족의 언어적, 문화적 유산으로서 그 자체가 알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둘째,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사이에 내용과 형식, 표현 면에서 상동성이 있어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연구」,(충북대학교 석사학위 논문,1995), p.1
고산 윤선도의 문학이 우리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기에 그 연구도 여러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 왔는데, 본 레포트에서는 <어부사시사>에 드러난 강호의 의미를 그의 생애와 사회적 상황, 사상성 등의 환경적이고 배경
윤선도의 생애
윤선도(尹善道) 1587(선조 20)~1671(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시조작가,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유심(唯深)의 아들이며,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유기(唯幾)의 양자이다.
유기는 유심의 동생으로 큰댁에
보길도를 발견한다. 보길도의 수려한 자연 풍광에 매료된 고산은 이곳을 은거지로 삼고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보길도의 산간 지역에 위치한 부용동(芙蓉洞)은 그 산세가 연꽃처럼 포개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비롯하여「산중신곡(山中新曲)」,「산중속신곡(山
윤선도)
1651년(효종 2) 윤선도(尹善道)가 지은 단가(短歌). 보길도(甫吉島)를 배경으로 지은 40수의 단가로, ≪고산유고 孤山遺稿≫에 실려 전한다. 이 노래는 작자와 제작연대 미상인 고려 후기의 〈어부가 漁父歌〉(이 계통의 노래 가운데 현전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됨)와 직접적 전승관
윤선도의 생활배경과 현실인식으로 보면 그것은 작가 나름의 관념적 파악에서의 표출이요, 구성적 상상에 의한 작시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시평이 나오게 됨은 그의 시가 독자에게 친근감과 미적 감동을 주는 시적 표현의 탁월성 때문이다. 거기에는 또 우리의 국어미를
보길도에 금쇄동, 문수동, 낙서재, 세연정 등 온갖 정자와 서재를 만들...
3. 고산의 작품들
지금까지 전하는 윤선도의 국문시가로는 75수가 있다. 그의 창작은 모두 그가 정계에서 떠나 경원의 유배기간 또는 고향인 해남의 금쇄동 혹은 보길도의 부용동 등 산수 속에 묻혀 깨끗이 살아가던 기간에